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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33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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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우 선생의 생애와 사상

심재우는 1933년 강릉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73년 독일 Bielefeld 대학교에서 Werner Maihofer의 지도로 법학박사(Dr. iur)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1998년 2월 정년 때까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법철학회 회장과 형사법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Ⅰ.

나는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전쟁의 와중에 겪은 인간의 한계상황과 극단적 대립상황은 나로 하여금 과연 인간집단의 구성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들었고,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질서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종전 후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나는 법과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되었고, 대학 입학 당시부터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내게 다가온 의문과 성찰을 '법철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대답을 찾고, 이론적 발전의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미 학부 때 당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철학을 강의했던 이항녕 선생의 문하생이 되었고, 내게 '법철학'은 삶의 동반자이자 삶의 목표점으로 확정되었다. 나에게 화두가 되었던 물음은 무엇보다 과연 국가란 무엇이고 또한 국가가 자신의 모습을 현실로 표출하는 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단순히 경험적인 차원에서 국가와 법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근거와 정당성근거에 대한 물음을 통해 당위(Sollen)로서의 국가와 법을 묻고자 했다. 그것은 곧 지배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이자, 어떠한 법이 그러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 사이 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법의 효력근거'로 정했다. 법철학자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법의 '효력'이라는 개념은 법이 사실적으로 관철되고 준수된다는 측면 이외에 그 타당성에 대한 근거를 밝히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나로서는 법이 단순히 사실적 측면에만 집중하면 권력이나 폭력과 구별할 수 없고, 따라서 법이 법으로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의와 같은 철학적 근거에 기초할 때에만 비로소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정당한 원리에 반하는 법은 설령 사실상의 효력을 갖더라도 법이라 할 수 없으며, 그러한 법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이 '저항권'에 대한 연구를 미래의 과제로 삼으면서, 나는 1966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아직 법철학이라는 분과가 정착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법철학과 관련된 변변한 자료를 입수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열악했다. 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던 후미진 국가의 젊은 법철학도에게 오랜 학문적 전통을 축적한 선진국가 독일로 유학을 가는 일은 당시로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역한 동경과 불안이 교묘하게 뒤섞인 도전이었다. 나는 '저항권'이라는 주제를 손에 쥐고 이 도전에 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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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유학시절 1976년 경 


 

Ⅱ.

독일 유학의 첫 번째 지도교수는 Marburg 대학교의 하인리히 헤르파트(Heinrich Herfahrt) 교수였다. 헤르파트 교수는 바이마르 공화국 때부터 명성이 높던 헌법학자였고, 자연히 '저항권'이라는 주제에 대한 나의 접근방식도 일단은 헌법적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나의 연구는 무엇보다 저항권이 결코 헌법내재적 권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근본원리와 동일한 정당성을 갖는 초헌법적 권리이기도 하다는 점으로 집약되었다. 즉,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헌법질서 내에서 행사되는 반대권이나, 찬탈과 같이 헌법질서를 파괴하려는 기도로부터 이를 보호하기 위해 행사되는 헌법수호권과는 별개로, 헌법질서 내부의 모든 수단이 더 이상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한계상황에서 인간다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행사되는, 근원적 인권으로서의 저항권이 존재하고 또한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그러한 저항권의 근거가 되는 인권 및 인간다운 법질서에 대한 법철학적 정당화는 내게 아직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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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유학시절 1976년 경 


유학 후 3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헤르파트 교수는 신장결석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심장쇼크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독일에서는 지도교수를 ‘박사아버지(Doktorvater)’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나는 말 그대로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고아가 된 셈이 었다. 새 ‘아버지’를 찾기 위해 나는 당시 Saarbrücken 대학교에 있던 베르너 마이호퍼(Werner Maihofer) 교수와 접촉을 했고, 다행히도 마이호퍼 교수는 나를 흔쾌히 제자로 받아 주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내게 단순히 박사학위논문을 지도해 줄 교수를 찾은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법철학이 시작되는 본격적 출발점이 었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마련해준 거대한 뿌리이기도 했다. 즉, 나는 마이호퍼의 법철학과 법철학적 사유를 통해 비로소 모든 혼란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법질서를 포함한 인간의 질서가 추구해야 할 척도이자 동시에 지향점으로 작동해야 할 근원적 질서원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여기서 짧게나마 마이호퍼의 법철학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말한 대로 마이호퍼의 법철학이 나의 그것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호퍼는 1954년 그의 교수자격논문 "법과 존재"에서 1927년에 출간된 하이데거의 유명한 저작 "존재와 시간"의 인식들을 차용하고 동시에 이를 극복하면서 1950년대 독일 법철학계의 거대한 주제였던 '자연법' 또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심오한 법철학적 정당화를 시도했다. 특히 마이호퍼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들을 통해 인간들이 서로 결합하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존재론적으로 분석하면서, 인간의 그러한 실존적 범주를 ‘로서의 존재(Als-Sein)’라고 명명했다. 이 ‘로서의 존재’는 인간의 ‘자기존재(Selbstsein)’와 함께 인간의 존재 자체를 구성하는 질서의 근원이며, 자기존재로서의 인간들이 서로 만나는 세계 속에서 그 만남의 질서를 규정하고 기획하는 불변의 궁극적 원리로 작용한다. 이로부터 마이호퍼는 ‘세계-내-존재’인 인간의 ‘법-내-존재’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로서의 존재’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되고 있고, 그 속에 이미 규범적 당위 구조가 내재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이 곧 ‘사물의 본성’으로 표현되는, 법의 존재론적 구조이다. 즉, 사회적 사실로서의 사물 속에 이미 인간질서의 원형이 내재해 있으며, 법질서는 바로 그러한 원형의 발현이며, 이를 그르친 법은 불법이거나 아니면 비법이다. 당연히 이러한 근원적 질서는 결코 초월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질서가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구체적 인간질서의 원리이며, 그래서 마이호퍼는 이를 ‘구체적 자연법’ 또는 ‘사물논리적 구조’라고 부른다. 이러한 실존적 원리와 함께 마이호퍼는 법치국가라는 인간질서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를 ‘인간의 존엄’으로 표현하고, 그 철학적 정당화를 칸트의 실천철학에서 찾는다. 즉, 자율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 자신의 자율을 최대한 실현하여 자기 자신을 도덕적 인격으로 완성할 수 있는 조건의 총체로서의 법치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존재(Menschsein)의 실존적 과제라고 한다. 이를 통해 인간질서에 내재하는 실존적 구조는 궁극적으로 더욱 인간다운 질서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러한 질서를 수립하는 미래기획 역시 인간의 실존 자체의 과제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에 내재하는 원리, 즉 이미 주어져 있는 것 (Vorgegebenheit)으로부터 미래지향적으로 우리에게 부과되어 있는 것(Aufgegebenheit)으로 향해 가는 것이 곧 우리 인간 실존의 법이다. 따라서 자연법은 이러한 실존법이며, 실존법이 곧 자연법이다. 그리고 이를 이론적으로 포착하여 서술하는 것이 '법존재론 (Rechtsontologie)'의 과제이다. 이러한 실존론적 법존재론이야말로 초월적 질서로 회귀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단순히 경험적 사실만을 중시하는 실증주의를 긍정하여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없었던 2차 대전 이후의 법철학이 존재와 당위 사이에 가교를 놓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나는 2008년 10월 독일 Bad-Homburg에서 열린 마이호퍼 교수의 90세 기념 콜로키움에서 “‘로서의 존재’의 법철학과 공자의 정명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면서 서두에 다음과 같은 헌사를 썼다.

"베르너 마이호퍼는 나의 학문적 스승이다. 그의 법철학과 형법사상은 나의 학자로서의 전 생애에 걸쳐 늘 나와 함께했고 나의 사유를 규정해 왔다. 그 길에서 나는 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장이처럼 세계와 인간을 조금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그 희망은 정신적으로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거인의 위대함 때문에 좌절되지 않을 수 없음을 늘 확인해야만 했다."

이 거인의 법철학은 나의 박사학위논문의 구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저항권을 궁극적으로 정당화하는 질서원리를 나는 마이호퍼의 법철학에 기대어 '인간의 존엄'에서 찾고자 했으며, 이로써 나의 박사학위논문은 '저항권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다. 나는 특히 마이호퍼를 통해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칸트의 인간존엄 사상을 천착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질서로서의 국가는 마땅히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질서로서의 법치국가이어야 한다는 인식의 철학적 기초를 섭렵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 하여 법질서는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법치국가와 헌법국가의 원칙을 나의 법철학의 출발점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이로써 저항권은 법치국가를 구성하는 원리와 똑같이 인간의 존엄에 근거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와 함께 나는 법치국가의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계몽철학의 사회계약론, 즉 홉스, 로크, 루소의 철학을 통해 법질서는 신이나 그 어떤 다른 존재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그리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 낸 질서이며, 그러면서도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아니라, 인간 사이의 상호성에 기초하는 확고부동한 존재론적 원리에 의해 인간질서가 지배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1973년 박사학위를 마치고 나는 자연법, 사물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표제어로 나의 정신세계를 무장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Ⅲ.

귀국 후 나의 첫 번째 법철학 논문은 1974년에 발표한 "인간의 존엄과 법질서"였다. 이 글에서 나는 무엇보다 칸트가 어떠한 실질적 가치인식으로부터 법개념에 대한 정의에 도달했고, 그러한 법개념이 인간의 실존에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칸트 질서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도출된다. 그는 인간존엄의 근거를 "이성적 본성은 목적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는 명제로 표현한다. 이 근거로부터 칸트는 "너는 인간을, 그것이 너 자신이건 타인이건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존중할 것이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정언명령을 도출 한다. 모든 인간은 인류 전체를 그 자체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이 원칙은 칸트에 따르면 신성한 원칙이다. 왜냐하면 도덕법칙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그의 도덕적 자유에 따른 자율을 행사하는 도덕적 존재(homo noumenon)로서 그 자체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서로 상대방을 존중해야 할 쌍방적 의무를 부담하며, 바로 이 쌍방적 존중의무를 통해 수립되는 인격에 대한 존중이 인간다운 질서의 토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질서를 칸트는 '목적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이 질서의 왕국은 자유의 한계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보장하여,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서로 양립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칸트에게는 바로 그러한 조건의 총체가 곧 법이고, 그래서 법은 모든 사람의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질서이어야 한다. 칸트의 이러한 질서철학은 나의 법철학에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내가 칸트에게서 얻은 가장 결정적인 통찰은 '인간의 질서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사회학적 대답이 아니라, '인간질서는 어떠한 질서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규범적, 당위적, 철학적 대답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의 핵심인 인격의 자유가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치국가가 곧 인간질서의 궁극적 의미이며, 현실의 모든 질서는 바로 이러한 이념적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만 그 정당성을 갖게 되며, 거꾸로 이 이념적 질서는 현실의 법질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실존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현실의 모든 한계상황(Grenzsituation)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는 인간존재의 근본상황(Grundsituation)을 제시하여, 법질서의 존재근거를 밝히고, 그 정당성의 척도를 확립하며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만드는 불변의 질서사상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결코 자의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질서 자체에 내재하는 궁극적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원칙을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로 오해의 대상이 되는 '자연법'이라고 부른다. 물론 나의 '자연법'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자를 전제하는 자연법이 아니라, 인간질서의 의미 자체에 근거하고, 인간의 존재 자체를 규정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연법이다. 따라서 이를 ‘이성법’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요즈음의 표현방식에 따라 '법도덕주의'라고 부르든, 그것은 나로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칸트의 원칙, 즉 인간의 존엄과 법치국가로 집약되는 인간질서의 근원적 원리가 갖는 '처분불가능성'이다.

칸트의 법철학에 관한 논문 이후 나는 사회계약론으로 총괄되는 근대 계몽철학의 법사상과 국가사상을 다루는 논문들을 발표했다. 이 주제는 나의 박사학위에서도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특히 홉스와 루소의 국가사상 역시 칸트와 마찬가지로 계약론적 이론구성을 통해 인간 중심의 법질서와 국가질서를 정당화하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물론 홉스는 칸트와는 달리 자유의 질서가 아니라, 안전의 질서를 통해 인간의 자기보존에 초점을 맞춘 질서원칙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자기발현의 질서에 초점을 맞춘 칸트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홉스의 안전국가는 통상의 해석과는 반대로- 결코 절대국가나 권력국가가 아니라, 인간의 객관적 실존조건을 보장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홉스의 텍스트를 기초로 밝혔다. 또한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자유를 획득한다는 역설적 이론구성을 통해 자유의 법치국가를 정당화한 루소의 법철학도,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é)'라는 핵심개념에서 드러 나듯이, 법질서의 목적이 인간의 평등한 자유의 실현에 있다는 점을 논증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밝혔다. 이 맥락에서 루소의 일반의지는 정의에 지향되어 있는 법의지의 대명사로서, 그것이 곧 법적 이성으로서의 자연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반의지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이 의지를 구속하는 이성의 규범, 즉 이성적 자연법인 것이다.

1998년 정년을 앞두고 나는 이러한 계약론적 정당화이론들을 "법치주의와 계몽적 자연법"이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논문에 담아 보았다. 이 논문에서 나는 단순한 법률국가나 권력국가를 넘어, 국가권력 자체를 법에 구속시키는 실질적 법치국가의 궁극적 과제는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 있음을 밝히면서, 그 정당화근거를 루소와 칸트의 법철학에서 찾고 있으며, 이들의 자연법사상을 '계몽적 자연법'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루소와 칸트는 모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의 자유를 인간 실존의 가능성조건으로 파악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 평등을 전제한다. 그 때문에 루소와 칸트는 '일반법칙' 또는 '일반의지'에 따른 자유와 평등의 질서를 요구하고, 이러한 질서의 틀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완성하고 계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고 본다. 그러한 가능성의 조건이 없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예속과 착취의 관계로 타락하고,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불법적 질서가 되고 말 것이다. 바로 이 가능성의 조건이 칸트의 이론철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인간질서의 ‘선험적 (aprionisch)’ 구조를 지칭하며, 이 선험적 성격을 나는 '자연법'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려고 한 것이다. 또한 '계몽적'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한편으로는 국가질서 자체의 법치국가적 계몽뿐만 아니라, 그러한 전제 아래 인간존재가 각자의 자유로운 기획을 통해 미성숙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완성해 나아간다는, 칸트적 의미의 계몽까지도 함축하고자 했다.


 

IV.

법질서와 국가질서의 보편적 정당화원리와 판단기준을 밝히려는 나의 법철학적 관심은 점차 동양의 질서사상에까지 사유의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무엇보다 인간이 사회적 생존을 영위한다면 그러한 생활관계 속에 이미 일정한 질서의 원리가 내재하고, 그러한 내재적 원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타당성을 갖는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이는 물론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당위적 질서로서의 보편적 자연법을 향한 길이 아니라, 구체적 생활관계와 함께 그리고 그 속에서 이미 특정한 형태로 올바른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는 길이다. 이는 스승 마이호퍼를 통해 내가 체득한 '사물의 본성'과 '구체적 자연법'에 관한 이론들이 이미 2000년 이전에 펼쳐진 동양사상 속에 완결된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는 놀라운 발견의 과정을 뜻하기도 했다. 즉, '사물'이란 사람들이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 상응하는 특정한 '어느 누구(로서의 존재)'로서 서로 만나는 사회적 관련성으로서의 생활 관계를 뜻하고, 이 생활관계에 내재하는 질서가 곧 그 본성에 해당한다는 마이호퍼와 마찬가지로, 이미 공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예컨대 군주나 신하와 같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이름(A)에 걸맞게 그 역할을 다 할 때에 비로소 올바른 사회질서가 형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명쾌한 언어로 표현되는 이 '정명론(正明論)'은 직분의 윤리로서 사회적 생활관계에서 각자가 갖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각각 다른 직분이 배분되어 질서를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질서를 형성하는 구성요소로서의 사회적 지위의 이름을 동양사상에서는 '名'이라 하며, 그 이름에 따른 직분을 '分'이라고 한다. 전자가 마이호퍼의 ‘로서의 존재’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로서의 존재'의 역할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명론에서 말하는 ‘名分’은 “‘로서의 존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행위준칙으로서 객관화된 것을 동양사 상에서는 '예(禮)'라 하고, 서양에서는 '법(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 또는 법으로서 규범화된 실정법은 이를 정당화하는 자연법을 배후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연법을 동양 유가에서는 정명론에 기초한 도리(道理) 또는 '사리(事理)'라 하며, 이는 마이호퍼의 법존재론에서 말하는 '구체적 자연법' 또는 '제도적 자연법'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정명론에서 말하는 ‘도리’와 ‘사리’, 법존재론에서 말하는 '구체적 자연법' 또는 '제도적 자연법'은 모두 실정법의 내용을 구속하는 '정법(正法)', 즉 '사물의 본성'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나는 유가의 법사상 전반을 고찰하고, 또한 공자와 순자에게서 발견되는 질서사상이 현대의 법치국가를 정당화하거나 법현실을 비판하는 척도를 제시하는 탁월한 사상이라는 통찰 에 도달했다. 이밖에도 맹자의 '역성혁명론(易姓革命論)'이 나의 오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저항권과 관련하여 그 개념사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시원적 형태의 저항권론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 또한 나의 동양철학 순례에서 얻은 커다란 소득 가운데 하나였다.

동양 법사상에 대한 연구를 서양의 법철학적 전통에 접목시키려는 나의 시도는 1999년에 발표한 "사물의 본성과 구체적 자연법"에서 조금 더 완결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글에서 나는 앞에서 설명했던 유가의 질서사상과 구체적 자연법론의 상관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하면서, 처분불가능하고 선재하는 원리로서의 사물의 본성론을 비교문화론 또는 동서비교법철학의 관점에서 심화시키고자 했다. 다만 사물의 본성론이 사물, 즉 존재에 내재하는 구체적 원리에 관한 이론이라는 점에서 이 구체성을 다시 제한하는 어떤 보편적 원리의 보충을 필요로 한다는 인식을 펼치고자 했다. 즉, 사물의 본성은 사물적으로 정당한 법을 제시해줄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인간적으로 정당한 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물에 내재하는 질서는 반드시 인간에 내재하는 질서를 전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나의 법철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인간의 존엄'을 다시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사물의 본성이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자연법은 자율주체로서의 인간의 존엄과 인격성에 기초한 보편적 자연법과 변증법적 관계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법질서가 된다고 본다. 즉,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를 무시한다면 그 질서는 결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이러한 변증법을 통해 나는 인간존재가 '던져진 존재이자 동시에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기획하는 존재'라는 실존철학의 인간관, 사물에 내재하는 질서원칙을 설파한 유가의 법사상과 구체적 자연법론,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법치국가이념을 하나의 흐름 속에 합일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보편과 특수의 긴장은 해소되고,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질서원칙을 역사 속에서 그리고 역사와 함께 실현해 나아가는 법질서의 이념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증법을 헤겔식으로 이해하여 지양과 극복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변증법적 관계 내부에 확고한 질서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실정법이 사물의 본성과 충돌할 때에는 사물의 본성이 우선하며, 사물의 본성이 인간의 존엄과 충돌할 때에는 인간의 존엄이 우선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실정법은 사물의 본성에 구속되어야 하고, 사물의 본성은 인간의 존엄에 구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질서(Ordnung)를 각각의 질서요소들을 적절한 곳에 위치지우는 것(Orung)이라 이해할 수 있다면, 질서사상 또한 이를 구성하는 이념과 실재의 적절한 위치를 규정하고 그 서열관계를 명백히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나의 법철학적 여정의 시발점이었던 인간존재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을 하나의 이론 속에 용해시켜 법철학적 집에 안주(安住)시키는 사유를 펼친 셈이다. 즉, 나의 사유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곧 인간이고, 자연법이든 사물의 본성이든 아니면 저항권이든 나의 모든 법철학적 화두는 결국 인간의 인간성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는 질서에 대한 염원과 그에 대한 이론적 해명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Ⅴ.

제한된 지면 속에 50년을 훌쩍 넘는 나의 법철학적 사유의 과정을 서술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지만,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나의 법철학을 세 가지 관점에서 요약해보고자 한다.

(1) 법과 법률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제정, 즉 정치적 결단과 사실상의 권력에 기초하여 효력을 갖는 법률은 그 자체만으로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의를 지향하는 '법'이라는 초실정적 정당성에 비추어 심사하고 판단되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법은 결코 법률의 총합으로서의 전체 실정법질서를 뜻하지 않는다. 법률이라는 '존재자'는 법이라는 '존재'에 근거한다. 이것이 곧'법존재론'의 요추이다.

(2) 정당성근거로서의 법이란 생활관계에 내재하는 질서, 즉 사물의 본성을 뜻한다. 이와 함께 법질서의 존재근거는 인간다운 질서,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질서를 기획하고 실현한다는 당위를 통해 확인된다. 이것이 곧 구체적 자연법과 보편적 자연법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3) 만일 법률 또는 법질서가 법의 존재와 정당성근거에 -라드브루흐식으로 표현하자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반하고,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고 파괴한다면 그러한 법률과 법질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자연법적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이다. 이것이 곧 자연법적 저항권론이다.

물론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기에 요즘의 법철학적 경향은 나의 법철학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법질서에 대한 분석과 관찰 또는 이른바 '해체'가 법철학 무대의 주역이 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법이 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법철학은 '법 없는 법철학'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더 정확하게는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렇다면 법철학 또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성찰이어야 할 것이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확고부동한 질서원칙을 밝히고, 그러한 질서원칙에 비추어 현실의 법질서를 가늠하는 비판의 무기이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오늘날의 시류에는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을 '자연법론자'라고 부르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나에게 법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의 기획'에 다름 아니다. 이 터전 위에서 법과 관련된 세세한 영역들에 빛을 비추는 작업은 후학들의 몫일 터이다.


*  이 글은 2013년 한국법철학회에서 만든 [한국의 법철학자](세창출판사)의 54면 이하를 전제한 것이다. 제자인 윤재왕교수가 작성하고 심재우 선생이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당시의 사진은 심재우 선생 별세 후 서가에서 발견되었다. 

 

 

 

심재우 선생 연보


本 籍:江原道 江陵市 淮山洞 137

生年月日:1933년 1월 23일. 강원도 강릉시 회산동에서 父 沈和燮 先生과 母 柳 女史의 子로 出生.



【家族關係】

1964. 11. 21. 洪惠娘 女史와 結婚.

1966. 10. 25. 長女 美淑 出生

1968. 9. 2. 次女 鐘淑 出生

1973. 12. 31. 三女 英淑 出生

1976. 7. 6. 子 鐘潤 出生



【學歷】

1954. 2. 江陵商業高等學校 人文科 卒業

1954. 3.~1958. 9. 高麗大學校 法科大學(法學士)

1959. 3.~1961. 9. 高麗大學校 大學院 法學科(法學碩士)

1962. 3.~1964. 3. 高麗大學校 大學院 法學科 博士課程

1966. 4.~1973. 7. 獨逸 Marburg, Saarbrücken, Bielefeld大學校 大學院 法學科에서 法哲學·刑法·憲法硏究

1973. 7. 獨逸 Bielefeld大學校에서 法學博士學位(Dr. iur) 取得



【經 歷】

1962. 3.~1966. 2. 高麗大學校 法科大學 講師

1974. 3.~1977. 2. 高麗大學校 法科大學 副敎授

1977. 3.~現在 高麗大學校 法科大學 敎授

1980. 3.~1980. 11. 高大新聞社 主幹

1981. 5.~1985. 5. 法務部 保安處分審議委員

1981. 7.~1982. 12. 法務部 政策諮問委員

1986. 2.~1989. 2. 高麗大學校 法學硏究所 所長

1988. 4.~1992. 7. 安岩法學會 會長

1988. 10.~1989. 4. 高麗大學校 敎授協議會 會長

1990. 6.~1992. 7. 韓國法哲學會 會長

1991. 11.~1992. 12. 韓國刑事法學會 會長

1992. 3.~1994. 2. 高麗大學校 法科大學 學長

1994. 9.~1996. 8. 外務部 行政審判委員

1997. 5. 高麗大學校 學術賞 受賞

1997. 12. 國民勳章 모란장 受賞

1992. 8. 韓國法哲學會 理事

1992. 8. 安岩法學會 名譽會長

1993. 1. 韓國刑事法學會 顧問

2019. 9. 善終


 

심재우 선생 주요 저작


【著書·譯書】

1973. 7.Widerstandsrecht und Menschenwürde    Bielefeld Diss.

1977. 12. 『權利를 위한 鬪爭』(R. v. Jhering) 博英社

1994. 3. 『法治國家와 人間의 尊嚴』(W. Maihofer) 三英社

1994. 11. 『暴政論과 抵抗權-19世紀 獨逸 政治理論에 관한 硏究』(H. Mandt) 民音社

1995. 9. 『責任刑法論-刑法上의 責任原則에 관한 論爭』(編譯) 弘文社

1996. 6. 『法과 存在-法存在論 序說』(W. Maihofer) 三英社

2020.   『저항권』, 고려대학교출판부 



【主要論文: 法哲學分野】

1961. 8. 『法의 效力의 根據에 관한 考察』 碩士學位論文 (高麗大 法學科)

1964. 9. 『相對主義의 法哲學的 意義와 그 限界』 『法律行政論集』7輯 (高麗大 法律行政硏究所)

1974.10.「人間의 尊嚴과 法秩序-특히 칸트의 秩序思想을 中心으로」 『法律行政論集』12輯 (高麗大 法律行政硏究所)

1975.11.「決定主義的 憲法槪念과 規範主義的 憲法槪念」 『憲法과 現代法學의 諸問題』(兪鎭午博士古稀記念論文集)

1978.3.「相對主義の法哲學的意義とその限界(一)」 『北海學園法學硏究』 13卷 3號(日本 北海學園大學)

1979.「相對主義の法哲學的意義とその限界(二·完)」 『北海學園法學硏究』 14卷 1號(日本 北海學園大學)

1979.12「T. Hobbes의 法思想」 『法思想과 民事法』(玄勝鍾博士 華甲記念論文集)

1981.12.「Rousseau의 法哲學」 『法律行政論集』 19輯 (高麗大 法律行政硏究所)

1982.10.「決定主義的憲法概念と規範主義的憲法概念-存在論的憲法槪念の確立のための批判的考察」 『論集』32號(商經編) (日本 札幌商科大學)

1986.4.「人間尊嚴의 法理와 國家倫理」 『現代社會와 傳統倫理』(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1990.5.「孟子의 易姓革命論」 『東西의 法哲學과 社會哲學』(徐燉玉博士古稀記念論文集)

1991.9.「抵抗權」 『法學論集』 26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92.8.「韓國における人間の尊嚴と抵抗權」 『札幌学院法學』9卷 1號(日本 札幌学院大學)

1992.12「在韓國的人的尊嚴和抵抗權」 『法學譯叢』(中國社會科學院 法學硏究所)

1993.9.「儒家의 法思想」 『安岩法學』 創刊號 (安岩法學會)

1993.12.「荀子의 法思想」 『法學論集』 29輯 (高麗大 法學硏究所)

1993.12.「儒家の法思想」 『北大法學論集』 44卷 4號(日本 北海道大學)

1994.3. 「抵抗權」 『北大法學論集』 44卷 6號(日本 北海道大學) 

1996.12.「韓非子의 法思想」 『法學論集』 32輯 (高麗大 法學硏究所)

1996.12.「權力者와 法治主義」 『東亞法學』 21輯 (東亞大 法學硏究所)

1997.8.「東洋의 自然法思想」 『法學論集』 33輯 (高麗大 法學硏究所)

1998.2.「法治主義와 啓蒙的 自然法」 『法哲學硏究』 創刊號 (韓國法哲學會)

1998. 「法治國家와 啓蒙的 自然法」 『法哲學硏究』,  (韓國法哲學會)

1999. 「事物의 本性과 具體的 自然法」 『法哲學硏究』, (韓國法哲學會)

2001. 「21世紀 韓國 法哲學의 課題와 展望」, 『安岩法學』 (安岩法學會)

2005.5. 「李恒寧先生의 職分法學과 具體的 自然法」, 『法哲學硏究』, (韓國法哲學會)

2005.12 「칸트의 法哲學」, 『法哲學硏究』, (韓國法哲學會)

2008.8. 「俞鎭五, 大韓民國 憲法의 基礎를 닦다」, 韓國史 市民講座, 一潮閣

2010. 「Die Rechtsphilosophie des Alsseins und die Lehre über den richtigen Namen bei Konfuzius」, in: Stephan Kirste/Gerhard Sprenger(Hrsg.), Menschliche Existenz und Würde im Rechtsstaat. Ergebnisse eines Kolloquims für und mit Werner Maihofer ais Anlass eines 90. Geburtstages, Berlin 2020, S. 95 – 101.



【主要論文: 刑法分野】

1975. 7. 「社會的 行爲論」 『法曹』24卷 7號(法務部 法曹協會)

1975.12.「刑法學에 있어서 目的的 行爲論과 社會的 行爲論」 『저스티스』13卷 1號 (韓國法學院)

1975.12.「獨逸刑法改正의 發展과 目標」 (Joachim Herrmann) 『저스티스』13卷 1號 (韓國法學院)

1976.4.「目的的 行爲論批判」 『法律行政論集』13輯 (高麗大 法律行政硏究所)

1976.7.「社會的 行爲槪念」 『考試界』

1976.8.「期待不可能性은 責任阻却事由인가?」 『法政』

1977.1.「目的的 行爲論의 構成要件槪念에 대한 批判」 『考試硏究』

1977.2.「目的的 行爲論의 不法槪念에 대한 批判」 『考試硏究』

19977.3.「目的的 行爲論의 責任槪念에 대한 批判」 『考試硏究』

1977.4.「目的的 行爲論의 行爲槪念에 대한 批判」 『考試硏究』

1977.6.「人間의 尊嚴을 侵害하는 犯罪」 『考試界』

1977.8.「刑法上 因果關係」 『月刊考試』

1977.8.「結果的 加重犯의 因果關係와 責任」 『法律新聞』 (刑事事例硏究) 1216號 (8.15)

1977.12.「刑法에 있어서 目的의 思想」 (F. v. Liszt) 『法律行政論集』15輯 (高麗大 法律行政硏究所)

1977.12.「略取誘引罪」 『考試硏究』

1977.12.「强制키스와 正當防衛」 (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230號 (12.5)

1978. 1.「刑法法定主義의 現代的 意義」 『考試界』

1978. 1.「落胎罪의 犯罪性」 『法政』

1978. 2.「刑罰權의 限界」 『考試硏究』

1978. 3.「懲戒權의 濫用과 異兒殺害罪의 時期」(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244號(3.20)

1978. 7.「刑罰效力 不溯及의 原則과 限時法」 『考試硏究』

1978. 8.「詐欺罪의 犯罪性」 『月刊考試』

1978. 8.「强制採血과 緊急避難」(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262號(8.7)

1978. 9.「不作爲의 行爲性」 『考試界』

1978. 9.「刑罰의 本質」 『考試硏究』

1978. 11.「刑法에 있어서의 目的思想(1)」 『考試硏究』

1978. 12.「刑法에 있어서의 目的思想(2)」 『考試硏究』

1978. 12.「過失의 共同正犯」(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281號(12.25)

1979. 1.「刑法에 있어서의 目的思想(3)」 『考試硏究』

1979. 2.「過失의 行爲性」 『考試界』

1979. 3.「社會的 行爲論의 過失犯의 體系」 『考試硏究』

1979. 3.「診療拒否와 不作爲犯」(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291號(3.12)

1979. 3.「刑法에 있어서의 目的思想(4)」 『考試硏究』

1979. 4.「刑法에 있어서의 目的思想(5)」 『考試硏究』

1979. 5.「刑法에 있어서의 目的思想(6)」 『考試硏究』

1979. 5.「禁止錯誤와 違法性의 認識」 『考試硏究』

1979. 6.「不法非難과 責任非難」 『法哲學과 刑法(黃山德博士 華甲記念文集)』

1979. 9.「規範的 責任論과 期待可能性」 『考試硏究』

1979. 9.「遺棄罪의 主體」(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315號(9.10)

1979. 11.「結果的 加重犯」 『月刊考試』

1979. 12.「T. Hobbes의 犯罪法定主義思想과 目的刑思想」 『法律行政義集』 17輯(高麗大 法律行政硏究所)

1979. 12.「贓物罪의 犯罪性」 『考試界』

1980. 3.「被害者의 承諾의 範圍」(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338號(3.3)

1980. 4.「T. Hobbes의 犯罪法定主義思想」 『考試硏究』

1980. 4.「過失犯의 共同正犯」 『考試界』

1980. 9.「目的的 行爲論批判 小考」 『現代刑事法學의 課題(上)』(韓沃申博士 華甲記念文集)

1980. 11.「佛蘭西 人權宣言에 규정된 刑事法의 原則規範」 『現代刑事法論』(金笠斗博士 華甲記念文集)

1980. 12.「刑法體系에 있어서 過失犯의 構造」 『法律行政義集』 18輯(高麗大 法律行政硏究所)

1981. 3.「刑罰權의 制限」 『刑事法講座』I (韓國刑事法學會)

1981. 3.「誤想避難과 錯誤」(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389號(3.23)

1981. 4.「目的的 行爲論의 過失犯體系에 대한 批判」 『考試硏究』

1981. 7.「不法原因給與와 橫領」(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404號(7.13)

1981. 9.「名譽毁損罪와 그 違法性阻却事由」 『月刊考試』

1981. 10.「不法領得意思와 使用窃盗」 『考試硏究』

1981. 11.「構成要件과 違法性의 關係」 『考試界』

1981. 11.「不作爲에 의한 自殺幇助」(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422號(11.23)

1981. 12.「不作爲犯」 『月刊考試』

1982. 1.「請負殺人의 共犯性」(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429號(1.18)

1982. 4.「正犯과 共犯의 區別」 『考試硏究』

1982. 6.「正犯과 共犯-Staschynskij事件」 『判例硏究』 1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82. 6.「構成要件의 本質」 『法律硏究』 2輯(延世大 法律問題硏究所)

1982. 8.「間接正犯」 『月刊考試』

1982. 10.「不能未遂犯」 『考試硏究』

1982. 11.「構成要件錯誤」 『考試界』

1982. 12.「刑法에 있어서 結果不法과 行爲不法」 『法學論集』 20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82. 12.「敎師의 懲戒權의 正當化와 錯誤」(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473號(12.20)

1983. 2.「結果的 加重犯과 因果關係」 『判例硏究』 2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83. 2.「未遂犯에 있어서 行爲不法과 結果不法」 『考試界』

1983. 5.「刑法上의 因果關係와 客觀的 歸屬論」 『考試硏究』

1983. 5. 「結果的 加重犯」(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492號(5.9)

1983. 7. 「各行爲論에 있어서의 不法槪念」 『月刊考試』

1983. 11.「目的的 不法論에 대한 批判(上)」 『考試硏究』

1983. 12.「目的的 不法論에 대한 批判(中)」 『考試硏究』

1983. 12.「社會的 不法論」 『考試界』

1984. 1.「目的的 不法論에 대한 批判(下)」 『考試硏究』

1984. 2.「結果的 加重犯에 대한 判例의 態度」 『月刊考試』

1984. 3.「正犯과 共犯의 區別」 『刑事法講座』II (韓國刑事法學會)

1984. 3.「刑罰의 本質」 『刑事法講座』II (韓國刑事法學會)

1984. 5.「落胎行爲의 違法性의 錯誤」(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1539號(5.7)

1984. 12.「保安處分制度에 관한 考察」 『法學論集』 22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84. 12.「過失犯의 共同正犯」 『判例硏究』3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85. 4.「保安處分의 限界」 『考試硏究』

1986. 6.「過失犯에 있어서의 結果反價値와 行爲反價値」 『考試界』

1987. 4.「拷間罪의 犯罪性」 『考試硏究』

1988. 4.「刑罰과 保安處分: 保安處分法의 改善을 위하여」 『考試硏究』

1989. 9.「國家刑罰의 正當性」 『思想과 政策』

1994. 4.「消極的 構成要件槪念」 『考試硏究 創刊 20周年 紀念論叢』(考試硏究社)

1994. 6.「違法性阻却事由의 前提事實에 관한 錯誤」 『判例硏究』 6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94. 11.「名譽毁損罪의 違法性阻却事由와 그 前提事實에 관한 錯誤」(刑事事例硏究) 『法律新聞』 2361號(11.21)

1995. 6.「死刑은 刑事政策의으로 의미있는 刑罰인가?」 『형사정책연구소식』 (韓國刑事政策硏究院)

1995. 9.「강제키스에 대한 혀 절단사건은 正當防衛인가 過剩防衛인가?」 『判例硏究』 7輯(高麗大 法學硏究所)

1996. 8.「腦死者 臟器移植의 法的 問題」 『省谷論叢』 27輯 3卷 (省谷學術文化財團)

2007.9. 「죄형법정주의의 현대적 의의」 『형사정책연구』 18-3



【主要論文: 刑事訴訟法分野】

1976. 5. 「刑事訴訟法의 基本理念과 基本原則」『考試硏究』

1976. 6. 「自白의 證據能力과 證明力」『月刊考試』

1976. 10.「辯護人의 權利와 義務」『考試硏究』

1977. 1. 「當事者主義와 職權主義」『考試界』

1977. 2. 「强制處分의 意義와 限界」『月刊考試』

1977. 6. 「自由心證主義」(證據法上의 諸問題)『法政』

1977. 9. 「傳聞證據와 證據能力」『考試硏究』

1977. 10.「檢事의 訴訟法上의 地位」『考試界』

1978. 1.「被告人의 訴訟法上의 地位」 『月刊考試』

1978. 4.「裁判上의 準起訴節次」 『考試硏究』

1979. 2.「彈劾主義와 當事者主義」 『月刊考試』

1979. 12.「刑事訴訟法과 人權保障」(刑訴法의 基本問題硏究) 『考試硏究』

1980. 6.「違法하게 蒐集된 證據의 證據能力」 『月刊考試』

1982.「檢察權의 獨立」   『大韓辯護士協會誌』 78號 (大韓辯護士協會)

1993. 10.「犯罪人의 마코나카르타로서의 刑事訴訟法」 『考試硏究』

1995. 5.「辯護人의 助力을 받을 權利와 司法改革」 『考試硏究』



【사후 출판된 몽록 법철학 연구총서】

(1) 열정으로서의 법철학, 2020

(2) 왕도와 패도, 2021

(3) 법철학(라드브루흐), 2021

(4, 5) 법과 존재 / 인간질서의 의미에 관하여(마이호퍼), 2022

(6) 저항권, 2022

(7)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 청년 마르크스 사상에서 법과 국가(마이호퍼), 2023

(8) 프란츠 폰 리스트의 형법사상: 마르부르크 강령, 2023


*  몽록 법철학 연구총서는 심재우 선생이 선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망인을 비롯한 유가족들이 선생의 생전 뜻을 받들어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법철학발전기금을 기탁해주신 것을 계기로, 윤재왕 교수가 주축이 되어 선생의 법철학적인 저작들을 총정리하여 순차적으로 펴낸 것이다. 


 

 

 

“흉악범 생명도 법으로 보호해야”

[인터뷰] 사형제 존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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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서울시 중구 명동을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현수막이 있다. 현수막 문구는 이렇다. “대한민국은 사형제 폐지국입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이다. 지난 10년간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있었지만 집행된 이는 없었다. IMF 외환위기로 민심이 흉흉하던 1997년 12월 30일. 23명(남성 19명·여성 4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902명. 건국 후 지금까지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의 수다. 인권단체들은 10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30일,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국’이 되었다며 축하 행사를 열었지만, 새해가 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선 후보 중 유일한 ‘사형제 존치론자’인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안양 초등생 납치 살해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흉악 범죄가 잇따르자 여권의 주요 인사인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피해자 인권’을 거론하며 사형 집행을 포함한 강력한 법 집행을 촉구했다. 법무부도 흉악 범죄에 한해 사형 집행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된 ‘논란’이 다시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심재우(75)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는 헌법재판소에서 사형제 합헌 판결(1996년 11월 28일)이 나왔을 때 ‘위헌론’ 입장에서 변론을 맡았다. 심 교수가 정년 퇴임한 지도 벌써 10년. 그 후 그는 앰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활동해왔다. 심 교수는 최근 다시 불붙은 논란을 어떻게 생각할까.


안양초등학교 납치살해 사건 등 최근 잇따른 흉악 강력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폐지됐던 사형제의 부활 움직임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형제를 존치시키더라도 그런 흉악 범죄를 막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형벌 효과는 일반 예방과 특별 예방의 두 가지로 나뉜다. 특별 예방은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을 개선·교화시켜 재사회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반 예방은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잠재적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막는 걸 말한다. 사형은 강력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인까지 이르는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이를테면 유영철이나 이번에 사건을 일으킨 정씨를 보면 ‘완전범죄’, 즉 영원히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예방효과가 없다. 정씨의 경우도 다시 말하면 자신이 저지른 짓이 사형도 받을 수 있다는 중범죄라는 점을 알면서도 한 것이다.”


사형제 존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범죄자의 경우 생명권에 반하는 행위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권 박탈의 형벌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한다.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법치국가의 법원리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흉악 범죄자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생명도 법이 보호해야 한다. 아무리 범죄 행위를 했다고 해도 생명권을 국가가 침해하면 안 된다. 이른바 응보형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아주 예전부터 있어온 원시 형벌이다. 문명국가의 형벌 개념은 다르다. 문명국가에서 형벌은 범죄자를 개선·교화시켜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사형은 사회로 복귀하기가 불가능하다. 사형은 원시 형벌로 오늘날까지 역사적 잔재로 남아 있는 것이다. 현대 문명국가에서 형벌 개념은 응보형이 아닌 목적형·교육형·교화형이다. 2006년 통계에 의하면 사형제를 법률법상또는 사실상 폐지한 나라가 190여 유엔 가입국 중 123개 나라다. EU의 경우 가입 조건에서 사형제 폐지 여부를 내걸었다. 독일의 경우 2차대전 이후 헌법 102조에 사형제를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문명사회라면 폐지로 가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경우 아직 폐지하지 않았다. 사형제라는 잣대로 보면 이들 나라는 문명국 혹은 선진국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인가.

“일본이나 미국을 야만이나 원시 국가로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문명사회에 살고 있고 계몽된 문명권이면서 유독 형별에서만 원시 형벌을 쓰고 있으니 모순된다. 가치적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엠네스티도 그렇지만, 그들 나라의 인권단체 등에서 인권 측면에서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 나라의 사례는 세계 문명 국가의 일반 경향도 아니다. 단언하건대 금세기 안에 지구 상에서 사형제도는 사라진다.”


한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형이 집행되지 않았을 뿐이지 사형제가 폐지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사형제 폐지 국가로 나가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독일 사례처럼 헌법 규정으로 사형제 폐지를 명기하는 경우다. 이러면 형법 등 하위 법률의 사형제에 대한 근거가 사라진다. 두 번째는 형법을 개정해서 현재 형법 41조에 명시된 형벌의 종류 가운데 사형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 벌써 두 차례 이상 시도했지만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사형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1996년의 경우 내가 직접 변론을 맡으면서 위헌을 주장했지만 합헌 결정이 내려지고 말았다.”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은 해묵은 것이다. 쉽게 이런 반론이 나온다. “당신의 가족, 배우자나 자녀가 그런 끔찍한 살해를 당했다고 가정해봐라, 당신은 그(흉악범)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심 교수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감정적으론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만약 누가 내 가족을 살해 했을 때 맞서 보복한다면 마찬가지로 살인죄다. 그러나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이라도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권과 생명권을 내가 사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인권 측면에서 봐야 한다. 국가 역시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 사형을 폐지하는 것은 곧 인권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범죄 피해자나 일반인들의 법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감정으로 말하면 나도 마찬가지다. 초등학생들을 납치 살해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건 사람이라면 당연한 감정 아닌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감정으로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기서 사형제를 유지할 근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순간적 감정, 일회적인 사건으로 형벌제도의 존폐 여부가 좌우되선 안 되며, 당연히 법치국가의 법 원리에 근거해서 결정 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21세기 안에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는 반드시 없어진다. 사형제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문명의 대세다.”


* 주간경향, 2008.04.08.자, 뉴스메이커 769호, 정용인 기자와의 인터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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