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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흥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13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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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흥우 교수에 대해서


남흥우(南興祐, Nam Heung-woo, 1913년 6월 7일 ~ 2012년 10월 6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법조인, 법학자, 법학교수이자 한국화가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과 여흥민씨의 딸 윤완구와 결혼하였다. 

1933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고 이듬해 경성제국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형법학을 전공하였다. 

1939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39년의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응시, 그해 10월에 합격하였다. 1941년 황해도청 고등문관 견습으로 보임되었고 1943년 평강군수로 광복 이후까지 근무하였다. 1946년 1월 미군정청 법무부 법무관이 되어 법무관, 검사 등을 지내다가, 1948년 정부 수립 뒤에도 대한민국 법무부에 2개월간 근무하였다.

1939년의 고등문관시험 행정에 합격하여 관료가 된 이후, 1943년부터 해방 직후까지 평강군수를 역임하였다. 1946년 미군정 주둔 후 법관이 되었고 1948년 10월 법관직에서 사퇴, 변호사로 활동하였으며 이후에는 법학자로 활동하였다. 

1952년 이후 부산대학교에서 근무하다, 1953년 10월부터 고려대학교 법학과의 조교수로 부임, 이후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를 지냈다. 인하대학교 법학과 초빙교수를 거쳐 1972년에 고려대법대 학장이 되었으며, 1978년 4월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1980년 9월 인하대학교 법학과 초빙교수가 되었으나 이듬해 12월 사퇴하였다.

1981년에는 학술원 인문사회제4분과 회원에 선임되었다. 1981년 2월 법무부 정책자문위원, 1983년 다시 법무부 정책자문위원에 재위촉되고 1990년 법무부 형법개정 특별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67년 4월부터 1년간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60년부터 1973년까지는 고등고시 출제위원이었고, 1974년부터 1978년까지 한국법학원 이사 그 밖에는 새한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등을 지냈다. 1996년 격암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남흥우교수는 한국화가로서도 활동하였다. 화가인 김원을 찾아가 그에게 그림을 배웠다. 1997년에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978년 9월 국민훈장 석류장, 1983년 10월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하였다. 

2012년 10월 6일 향년 99세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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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흥우 선생 주요 경력

 

학력사항

1939. 3 경성제국대학 형법학 법학사

1975. 5 고려대학교 명예법학박사


경력사항

1913.6.7 서울特别市 鍾路區 社稷洞에서 宜寧 南氏 家門의 韋齊 相瓒先生과 韓山 李氏의 次男으로 出生

1922.4 서울 梅洞普通學校 入學

1928.4 京城公立中學校 入學

1933.4 京城帝國大學 豫科 一學年 入學

1935.3 同校 豫科 修了

1939.3 京城帝國大學 法文學部 法科 卒業

1940.10 日本國 高等試驗 合格

1941.2-1945.8 黃海道廳道屬 및 江原道 平康郡守

1946.1-1948.10 美軍政廳 法務士, 서울控訴院 司法官試補,過渡政府 法務部 法務官兼檢事

1947. 6 第一回 司法官試補 實務修習試驗 合格

1948.11-1952.4 辯護士

1952.4-1953.9 國立釜山大學 助教授

1953.10-現在 高麗大學校 法科大學 助教授 副教授教授

1960-1971.高等考試 委員

1962.3-1962.6 歐美各國司法 및 學事制度 視察次 旅行

1967.4-1968. 3 韓國刑事法學會 會長

1970.4-1972.3 서울辯護士會 文化公報委員長

1972.9-1978 高麗大學校 法科大學長

1974-1978 韓國法學院 理事

1974  高麗大學校 名譽法學博士

1978  大韓民國學術院 會員

1980-1981  仁荷大學校 招聘敎授

1981-1983  法務部 政策諮問委員

1990  法務部 刑法改正 特別審議委員會 委員

1991-  格巖文化財團 理事長

2012  10월 6일 別世


海平 尹琓求와 結婚하여 現在 長女 惠卿(出嫁;夫,康星旭)과 長男 基邦,次女 惠貞,次男 基潤의 二男二女를 두고 있음.


상훈

1978. 9 국민훈장 석류장 대통령1983. 10 대한민국학술원상 대한민국학술원


연구업적

형법강의 (총론) (경기문화사, 1958)

형사정책 (박영사 1962)

형법강의 (각론) (고려대학교 출판부, 1965)남흥우 수필집 (국학자료원, 1996)

현석 남흥우 산문집 (국학자료원, 1996)


논문

罪刑法定主義에 대한 새로운 考察(法學論集 創刊號 1958.3)

刑法 第17條와 因果關係(考試界 1961.9)

犯罪의 地域研究와 이의 豫防策(法政 1961.10)

刑事政策의 意義와 그 研究方向(考試界 1962.1)

犯罪原因으로서의 素質說과 環境說의 發展(考試界 1962.11)

經濟的 環境과 犯罪(考試界 1962.12)

犯罪의 集團化와 刑法理論(法政 1962.12)

少年犯罪問題(考試界 1963.1)

犯罪의 都市化와 犯罪地域 研究(法政 1963.1)

保安處分의 概念과 그 適用의 前提條件(考試界 1963.2)

犯罪性과 遺傳(考試界 1963.3)

文化와 犯罪(考試界 1963.4)

刑罰의 本質(法政 1963.5)

傳聞證據(法政 1963.7)

「매스·커뮤니케이션」과 犯罪(考試界 1963.8)

刑事學의 成立·對象 및 限界(法政 1963.9)

犯罪의 都市化(考試界 1963.9)

心理學的 犯罪觀(法政 1963.10)

家庭과 犯罪(考試界 1963.10)

限時法(法政 1963.11)

內亂罪의 要件(考試界 1963.11)

交互訊問制度(法政 1963.12)

更生保護와 犯罪豫防(更生保護年報 1963)

精神病質者의 犯罪와 이에 대한 治療 및 對策(法政 1964.1)

落胎罪(法制月報 1964.4)

各國立法例로본 常習人 對策(司法行政 1964.6)

文化葛藤과 犯罪(考試界 1964.8)

內分泌障碍와 犯罪(法政 1964.8)

刑法上의 占有(司法行政 1964.9)

法律의 錯誤(考試界 1964.10)

證據湮滅罪(法政 1964.10)

贓物罪의 本質(司法行政 1964.10)

原因에 있어서 自由로운 行為(法政 1964:11)

遺棄罪와 現行法 第18條(司法行政 1964.12)

住居侵入罪(考試界 1965.1)

刑法上의 隱匿行為(司法行政 1965.3)

準强盗의 未遂(考試界 1965.4)

事實의 錯誤와 不能犯과의 關係(法政 1965.4)

不作為犯(考試界 1965.5)

犯罪實行行為가 아니고 罪를 犯하는 경우(司法行政 1965.5)

犯罪에 대한 社會學的 考察(高大六十週年紀念論文集 1965.5)

問接正犯 (法政1965.6) 

學證責任 (法政1965.7) 

未必의 故意 (考試界1965.9) 

常習犯의 本質과 對策 (法制月報1965.11) 

公務를 妨害하는 罪 (司法行政1966.2,3) 

中止犯 (法政1966.3) 

緊急避難에 대한 正當防衛 (考試界1966.3) 

告訴의 追完 (考試界1966.4) 

僞證罪 (考試界1966.8) 

共犯과 身分 (司法行政1966.9) 

淫亂性과 藝術의 自由 <刑事法의 理論과 實際> (法政1967.6) 

國際法과 刑法에서 본 間諜, (思想界 1968)

日帝의 韓國侵略에 있어서의 法規範과 그 適用에 관한 問題 (亞細亞硏究1969.3)

表現犯罪에 관한 硏究, (高大 法律行政論集 1974)

挑發에 의한 正當防衛, (高大 法律行政論集 1976)刑法學에 있어서 意思自由論, (송정 古稀論文集 1982)

良心犯의 問題, (考試界 1989)責任刑法의 諸問題, (學術院論文集 1991)

責任刑法의 諸問題, (崇實大學校 人文·社會科學) (1992)危險犯罪의 理論과 危險社會, (學術院論文集 2002)


대외활동

미국 각 대학(Harvard, New York, Chicago)에서 학술교류 1962. 3~1962. 6일본 관서대학교에서 학술교류 1976. 11~1976. 12.


 

 

틈틈이 등산·운동… 요즘도 집필 열정

[인터뷰] 변호사남흥우 (96세) 2009.1.16


남흥우 변호사는 96세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현역이다. 서울 중구 무교동에 있는 새한합동법률사무소로 주 1회 꼬박꼬박 출근하고, 공증 관련 업무를 본다. 남 변호사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맏사위로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한국 법조계에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교육자다. ‘고대 법대’의 명성에는 남 변호사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아직도 고려대 법대 명예교수이고, 교수 모임에도 꼬박꼬박 참가한다. 남 변호사를 법률사무소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오래 살아서 좋은 것도 많지만 안 좋은 것도 있어요. 외로운 거죠. 집사람(윤완구 여사)도 몇 년 전(2007년) 이승을 떠났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산에 함께 갈 친구들도 없어요. 다 죽었어요. 내가 원로 법조인 모임의 고문인데 나이가 제일 많아요.”


그의 얼굴에 잠깐 그늘이 스쳤다. 남 변호사는 90을 넘긴 고령에도 딱히 불편한 곳이 없어 보였다. 아직도 ‘산에 오른다’는 얘기가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봄, 가을이면 북한산에 자주 가요. 구파발쪽으로 올라가요. 북한산성을 한바퀴 돌고 세검정으로 내려오죠. 요즘은 날이 추워서 집 근처 용왕산(서울 양천구 목동)에 올라갑니다. 어쨌든 틈틈이 운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녁산책도 빼놓지 않고 합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북한산에 올라야죠.”


남 변호사는 “귀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꽂고 지내는 것 외에는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노인병’인 혈압과 당뇨도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지상에서 90년 이상을 보내고 나면 어떤 일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낄까. 남 변호사에게 물어보았다. “교직생활이 그래도 가장 큰 보람이죠. 광복 직후 판·검사 안하고, 잠깐 변호사 개업한 것 빼고는 계속 교단에 있었습니다. 고려대 법대에서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법대 학장까지 했죠. 논문도 꾸준히 썼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학술원 잡지에 논문을 게재했으니까요.”


남 변호사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프로필을 보면 ‘화가’ 경력도 있다. 실제로 개인전도 가졌다. “돌아가신 김원 선생(1994년 작고)에게 그림을 배웠어요. 제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해준 고마운 분이죠. 전시회는 1997년에 한 번 했습니다. 어찌보면 그림도 제 건강에 도움이 됐을 것 같네요. 풍경화를 많이 그렸기 때문에 캔버스를 메고 전국을 누볐어요. 요즘은 그리지 않습니다.”


남 변호사는 학위논문을 쓰는 대신 최근 인문과학 교양서를 집필중이다. “3년 전부터 쓰고 있어요. 한 70% 완성됐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읽고 보고 배운 것들을 정리해서 젊은 세대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르면 올해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계획을 얘기하며 남 변호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의 장수비결은 그처럼 항상 ‘계획’을 지니고 사는 것 아닐까.


건강비결 - 꾸준하게 걷고 식사는 채식 위주


남흥우 변호사의 건강비결은 ‘걷기’와 ‘채식’이다. 북한산과 용왕산 등반도 걷기의 한 방편이다. 날이 추워 산에 못가면 자택 인근에 있는 목동 파리공원 산책이라도 나간다.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다. 식사는 채식 위주로 한다. “아침엔 빵과 과일을 먹어요. 토마토, 포도, 사과 등의 과일이나 채소를 좋아하죠. 점심은 떡국을 즐겨 먹고, 저녁은 일반식으로 해요. 그리고 가능한 한 채식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죠. 물론 나이먹으며 자연스럽게 양도 줄었습니다. 소식합니다.”


남 변호사는 20년전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즐기던 술도 줄였다. 와인 한잔 정도가 요즘 주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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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흥우교수의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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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는 한문학자이자 고려대 국문과 교수였던 운정 김춘동 선생이 남흥우 선생에게 드린 글이다. 운정 선생은 1933년 <조선야사전집> 주해, 1940년 오문출판사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저서에는 <운정산고>(고려대출판부), 한역 속악부, 역서로서 삼국유사, 논문으로는 <한국여류시인 허난설헌 소고>등이 있다. 고려대학의 정재호, 홍일식, 이동환 교수, 숭실대 소재영 교수 등이 운정 선생의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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